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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4 16:29:36
kwsi
한국사회포럼2006-반성폭력운동,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한국사회포럼2006 - 여성운동, 차이와 소통 그리고 새로운 미래 발제문5]

반성폭력운동,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원사/한국성폭력상담소

반성폭력운동 활동 년수만 늘면서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성폭력에 대해서는 어떤 것을 명확하게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깨달음인 것 같다. 오늘 나는 그동안 운동과정에서 반성폭력운동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고민을 조금 꺼내어 보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매우 한정적이고 단편적일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막막해 보이기만 한 반성폭력운동에의 새로운 돌파구, 비젼을 다른 사람들의 참신한 시각과 많은 조언으로 이 자리에서 새롭게 조정되고 설정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성폭력 개념 새롭게 구성하자!

성폭력 개념은 여성운동계, 여성학계 안에서, 그리고 각각의 현장 안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갖고 논쟁이 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반성폭력운동은 성폭력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란 출발부터 많은 혼선이 있어 왔다. 일예로 성폭력 개념을 광범위하게 설정하면 여성의 성을 국가에 너무 의존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으며, 그의 반대도 있을 수 있다. 현재 폭력과 협박에 의해서 성기중심적으로 규정되는 협소한 성폭력개념에서는 많은 여성들의 성폭력피해를 구제해주지도 설명해내지도 못한다. 따라서 성폭력개념을 데이트성폭력이나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동의를 구하지 않은 개념으로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모두 일리 있다. 성폭력은 감정을 가지고, 사고하고, 갈등하고, 느끼는 사람인 여성에게, 그리고 그 여성은 수많은 맥락 속에서 실존하는 까닭에 단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폭력은 그야말로 맥락에 따라 개별 사안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질 수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과정으로서 혹은 해석으로서의 개념이다. 결국 각 사안별로 우리 안에서는 그것이 성폭력이다, 아니다 혹은 성적사기 이 용어는 2000년 12월 ‘운동사회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관련하여 활동가들과의 토론 중 만들어 낸 말이다. 아마 각 단위별로 ‘성폭력’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와 같은 아이디어는 한번쯤 나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다라는 논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 안의 논의들은 법적 다툼에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특수한 상황과 조건들에 대한 고려를 반드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사항임을 주장하는 정도의 부분에 한정될 뿐이어서 좀더 확장되고 외화된 어떤 논의가 필요함을 느낀다.
성폭력은 피해자 입장에서 봤을 때, 그 의미가 다음 변수들에 의해 매우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즉, 피해자의 성장과정, 교육환경, 앞의 두 가지로 인해 갖게 된 가치관/성인식, 가족들의 태도, 가족과의 관계, 친구 외 주변 사람들의 태도와 지지정도, 과거 성폭력경험, 과거 성관계 경험, 피해자의 성적취향, 사건 당시 혹은 이후 몸의 감각/반응, 현재의 상황, 피해자의 기타 성향, 지역문화, 사회전반의 성문화, 가해자와의 관계, 당시의 분위기, 가해자의 이후 태도, 장애여부 등 너무나 많은 변수에 의해 같은 행위가 성폭력의 기억으로 남기도 하며 그렇지 않기도 하다.
작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생존자말하기대회 준비를 위한 사전웍샵에서 한 그룹이 ‘애매한 성폭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경험을 나눈 적이 있다. 여성의 성적경험이 가부장제하에서 성폭력과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성폭력과 성관계를 분명하게 나누어 말하기 곤란함을 종종 느끼고 있다. 당시에는 성관계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괴로워한다든가, 성폭력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혼란스러워한다든가, 성폭력은 아닐 수 있지만 찜찜하게 남았다거나, 어느 부분에서는 분명 성폭력이지만 그 이전과정에서는 상대와의 소통으로 인식된다든가 하는 다양한 방식의 여성들의 경험이 존재한다. 이 수많은 지점들을 어떻게 법적 제도적 장치에서 혹은 반성폭력운동 안에서 드러낼 수 있을까? 우리 안에서 혼란스런 이 부분을 어떻게 사람들, 남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납득시킬 수 있는가? 의 질문이 따라오지만 우리는 반성폭력운동 안에서 정체된 듯 기존의 법적, 제도적 싸움의 과정에서 보다 섬세한 성폭력담론의 생산을 요구받고 있다.
반성폭력운동에서 성폭력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라는 첫 번째 물음에서부터 나는 이렇듯 혼란스럽고 아직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상태다. 다만 성폭력은 당위적 혹은 선언적 정의에서 보다 맥락적이고 세분화된 정의를 찾아야 할 때임을 실감한다.


2. 누구를 향해 말해야 하나? 반성폭력운동의 전략

99년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에서 활동할 당시, 나는 성문화바꾸기 운동의 대상은 남성이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여성들에게 이야기하는 시간에 남성들에게 이야기해야 근본적으로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여성을 향해 호신을 가르치거나 혹은 성폭력실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비록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 하더라도 ‘성폭력유발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운동을 할 수는 없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해서 당시 여러 여성운동단체와 기타 단위에서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 사업을 공동으로 내는 제안에 대해 가족과성상담소만 반대하여 그 프로젝트에 결국 빠지기도 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아주 많이 달라지진 않았으나, 현재 내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으라차차 호신’, ‘소녀들을 위한 호신’ 등 여성주의 방어에 대한 고민을 갖고 사업을 꾸렸었고 올해도 추진 중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들의 잠재된 방어능력을 키우고 강요된 여성성으로 인해 퇴화된 힘, 그리고 그로 인해 사라진 자신감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서 그동안 얼마나 우리 몸 안에 가부장적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예뻐야 한다 거나 혹은 조심해야 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기대를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문화 안에서 습득해 온 사실을 한 번 더 몸을 통해 깨닫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된다.
최근 연쇄성폭력과 어린이성폭력 후 살해한 사건, 여성재소자의 자살사건 등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마치 세상 사람들은 자신은 그동안 그러한 문화에 가담하지 않은 양 성폭력의 심각함을 얘기해달라며 난리였다. 심지어 어떤 40대 남성은 상담소에 전화하여 “너희들이 왜 전자팔찌에 반대하냐? 너가 성폭력을 당해봐야 안다”고 호통을 쳤다.
상담소는 그 난리 속에서 성과위주의 무책임한 정책내기나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 장단 맞추는 여러 움직임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TV, 라디오 등 언론에서는 지난 2주 동안 내내 성폭력 보도에만 집중했고, 그 세를 몰아 각 부처나 의원들, 그리고 운동 단위들은 무엇으로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는 참으로 그러한 움직임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동안의 운동의 역사가 이러한 심각한 사건들이 터진 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법이 제정되고 개정되는 성과가 있었으나, 과연 역사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확신이나 믿음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추세에 맞춰 여성들이 원하는 정책을 곧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그만큼 현장에서 성폭력운동의 현실 속에서 바둥거리기만 했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대안을 마련해내지 못한 현실도 분명 있었다. 그래서 부끄럽고 그래서 한편 운동의 방식과 내용에 대한 변화를 고민하게도 된다.
끊임없이 요구되는 인터뷰 요청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성폭력이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심각한 문제인지, 그래서 강력한 처벌 등의 정책이 왜 필요한지에만 관심을 모았다. 사람들은 마치 성폭력이 피해 여성의 몸에 엄청난 손상을 입힌 것으로써 인식하며 안타까워했고, 그렇게 손상된 여성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지 않겠냐라는 기대를 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했다.
이런 사태 속에서 나는 더욱더 반성폭력운동이 일반 대중을 향한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운동을 하면서 남성을 만나고 성폭력을 이해시키기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솔직히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에 반해 여성들, 피해생존자와 만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가해자와 성폭력 문화를 비난하고, 힘을 모아 내는 작업들, 자매애를 꿈꾸는 작업과 다양한 시도는 신나고 흥겹다. 그러나 ‘성폭력피해자유발론’이 강력히 대두되는 사회 안에서, 잠재적 피해자 혹은 생존자를 대상으로 한 운동을 주로 하게 될 때, 의도와 상관없이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책임 지우려는 법조계 편견과 여론을 우리는 종종 마주해야 했고, 그것을 방어하는데 역량을 또 쏟아야 했다. 그동안의 반성폭력운동이 생존자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었고, 그것은 사실상 절박한 상황에서 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우리들에게 주어졌던 일이며,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반인의 편견의 폭은 우리가 싸운 만큼의 변화로 따라와 주지 않았다. 여성계가 싸워 이뤄낸 성과인 성폭력 관련 정책과 제도에서도 잘못된 시각의 규정을 끼워 넣었고 성폭력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 해석했다. 가해자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성계의 주장을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그들 구미에 맞게 쉽게 대체되었다.
이런 반복 속에서, 나는 운동의 많은 비중이 일반 대중과 잠재적 가해자를 향해 다른 방식으로 좀 더 치중할 수 있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성폭력가해문화를 바꾸고 성폭력문제를 고민하고 퍼뜨리는 예방책에 우리의 힘을 기울일 수 있기 위한 토대를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3. 국가와의 관계

94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의해 성폭력상담소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반성폭력운동은 국가와 더불어 성장해 온 특성이 있다. 이로 인한 성과는 무엇보다 현재 전국 140여개의 상담소와 피해자보호시설에서 연간 약 6만 여회 이상의 상담으로 만나고 지원되는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삶, 그리고 제한적으로나마 국가차원에서 의료지원과 법률지원이 행해지는 부분일 것이다. 이는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 사회적으로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인식한 것을 의미하며, 여성운동이 국가를 움직인 중요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우리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여성단체가 한다는 정당성에서 국가의 지원을 당연시하고 있으나, 그 과정에서 국가의 통제는 국가 편의주의로 조금씩 강화되고 있는 중이며 상담소는 마치 국가의 행정업무를 처리하거나 서비스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의 비중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국가가 상담소를 좀더 체계적으로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과정 속에서 작년에는 한 지역 상담소가 지자체와의 갈등으로 지원이 끊기는 사건도 발생했고, 의료비 지원상에서 피해자를 드러내는 방식의 서류를 요구하거나 지원비를 제한하는 등의 요구도 점점 그 수위를 더해가는 경향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여성가족부가 의료기관이 중심이 된  ‘해바라기아동센터’를 설립하여 이를 전국에 확대 실시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고, 기존 상담소들의 역할을 국가가 대규모 단위로 가져가려는 등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이러한 국가의 개입에 대해서는 상담소마다 혹은 개인마다 여러 의견들이 있다. 국가가 성폭력사안에 대해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의견에서부터 국가 체계가 행정편의 중심 체계로 운영될 것이며 따라서 감수성이 필요한 성폭력사안을 국가에 맡기는 것은 무리다라고 보는 의견, 또는 국가에 의해 대규모 단위로 이루어지면서 지역에 뿌리를 두고 활동해 온 기존의 상담소 역할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 라는 우려, 혹은 우리의 할 일을 국가가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솔직한 고민까지 정말 다양하다.
전국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현재로서는 국가가 철저한 준비와 현장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장기적 전망도 세우지 못한 채, 산발적으로 의료기관이나 심리학계 등 학위 중심의 대규모 기관만을 세우려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현재 체계 안에서의 의료적 ․ 법적 제도의 미흡함을 해결하는 작업, 그리고 이미 전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담소들의 역량을 살려내고 그 안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작업들을 우선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또한 국가가 그들의 역할을 해나감에 있어 피해자관점에서 성폭력문제를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이 혐의를 두고 있다.
나는 이러한 입장에 기본적으로는 공감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가 상담소역할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틀이 마련된 상태에서 서비스나 행정업무를 국가가 책임지고 여성단체는 다시 그것을 감시하는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동안 이루어진 국가 차원의 재정적 지원이 빠져나가면서 상담소가 기반이 되어 활동했던 여성운동, 반성폭력운동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방식을 피하기 위한 대안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4. 기타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인력 및 전문성의 문제, 조건의 열악함, 전망의 부재, 중간리더의 부족, 학계와 다른 단체간의 연대 부족, 담론의 부재, 자유로운 소통의 부재, 그리고 협의회/연합체와의 관계 등 사실상 나누고 싶은 주제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준비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과 내 자신이 무엇을 정말 소통하고 싶은지, 그리고 반성폭력운동에 있어서 현시점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지점이 무엇인가도 고민이 되었다.
반성폭력운동을 하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너무 좋은 사람들, 생각들,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법과 자매애, 그리고 운동가로서의 비젼 등이 그것이다. 특히 기존과 다른 방식의 운동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의 욕망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내가 얻은 것을 어떻게 더 풍성하게 다시 토해내야 할까? 어떻게 다른 색의 꿈들을 만들어 나가는데 에너지를 모을 수 있을까란 고민이 생긴다. 그리고 어느새 운동의 선배 입장으로서 다른 사람과 나눌 과제가 나에게 주어진 것만 같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여성들에게 더 좋아졌는지, 아니면 더욱 희망이 없어졌는지 그 답은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분명 세상은 달라졌고 문화적 토대 또한 달라졌다. 하지만 우리의 운동방식은 지난 7,80년대 운동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달라진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변화해가는 문화와 운동방식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지를 물었을 때, 나는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새로운 운동을 꿈꾼다. 새로운 판을 짜고 싶다. 그것이 소통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운동이 더 활발하게 교류되고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고 새로운 조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과거 운동을 죽이는 방식이 아니라, 새롭게 판을 짜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의 답을 나는 소통이라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도 그러한 소통의 자리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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