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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4 16:30:37
kwsi
한국사회포럼2006-'진보적 여성단체'의 위기


[한국사회포럼2006 - 여성운동, 차이와 소통 그리고 새로운 미래 발제문6]

'진보적 여성단체'의 위기

                                                  조이여울/여성주의 저널 일다 편집장

논제 1> 진보와 여성운동

1) 여성주의를 배격해 온 '진보진영'
조직의 진보성은 정치, 이념적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다분히 한국사회에선 21세기에도 진보개념이 1980년대 그것의 수위에서 논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진보와 여성운동, 여성운동의 진보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소위'진보진영'에서 이야기하는 진보의 개념을 먼저 물어야 할 것 같다. 성차별적 진보란 존재하는가. 평등이란 이슈는 진보성의 개념 속에 들어있지 않은가 하는 회의적인 질문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진영'에서 여성주의와 여성운동, 여성운동단체에 대해 부당한 평가가 난무했다는 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여성주의 자체를 폄하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있다.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잣대로여성운동과 조직을 진보적이냐, 아니냐 가늠해왔던 인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가필요하다고 본다. 오히려 여성운동진영 측의 비판적 소리들이 아쉽다.
아직도 여성운동진영에 대해 수식어처럼 따라디는 '중산층 엘리트 운동'이라는 개념은 이론적으로 본다면 노동자들의운동과 농민들의 운동을 제외한 모든 운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시민단체와 인권단체, 환경단체의 운동, 또 과거 민주화 운동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이 대중의 이해, 혹은 기층의 이해를 떠나 부르주아 엘리트 층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듣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그러한 비난이 난무하다. 심지어 중산층 엘리트인 남성지식인들로부터 그렇게 폄하되곤 한다.
그 이유는 가부장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세계관 속에 여성주의가 녹아들 틈이 없었기 때문이며, 여성운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좌파이론의 계급 축에 여성운동의 활동이 가까이 있을 때만 이를 인정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정하며, 성별 권력구조에 대해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하는 여성운동을 심지어 투쟁의 방해꾼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왜 '진보진영'과 여성운동진영은 별개의 위치에 놓여있는가. 그것은 '진보진영'의 이슈에서 여성 전체가 소외되어 온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위 '몰성화'라고 이야기되는 부분, 직접적으로 여성들을 차별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의 시선을 수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과정과 결과를 통해 차별하는 것이다. '진보진영', 또는 사회진보세력은 스스로의 진보의 개념과 진보성향의 정도도 점검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여성주의적 세계관을 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진보성 무뎌지는 기존 여성단체들
그렇다고 진보라는 개념은 여성운동진영에서 무의미한 것인가? 여성운동진영에서는 진보성의 잣대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여성운동계도 진보나 진보성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많이 사용해왔다. 소위 '진보적 여성단체'는 1980년대 중후반 민주화운동과 여성인권운동을 축으로 하는 여성단체들이 설립되면서 사용되어온 명칭이다. 이는 이전의 여성단체들과 성격상 구분 짓는 용어였으며, 이전 조직들은 관변단체 혹은 보수적 여성단체로 분류됐다.
그러나 '진보'와 '진보성'의 개념은 사회 변화에 따라 역시 변화되는 것이다. 보수적 여성단체로 분류되는 단체라 하더라도 10년 전, 20년 전, 그리고 100년 전부터 이 땅에 자리잡아 온 단체 중엔 설립됐을 땐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이었던 단체들도 있다. 운동단체는 문을 닫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성격이 보수화되면서 더 이상 제 기능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보수적 여성단체들은 독재에 저항하지 않는 단체, 운동성을 잃고 더 이상 여성들의 권리를 대변해주지 못하는 단체, 여성주의적 관점이 희미한 단체, 단체와 그 구성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는 10년 전, 20년 전 설립돼 민주화와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을 해왔던 '진보적 여성단체'들이라고 해서 21세기인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진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도 제기해볼 때가 됐다. 혹은 그 진보적성향은 어느 정도인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이 이 사회에서 진보적 가치인가에 대한 개념부터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1980년대식 '계급'과 '민중'담론으로 진보성을 가늠하는 사람들은여성단체들의 활동이 계량적이라거나 반민중적이라거나 계급의식이 없다고 비판하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성단체가 해당 정당과 가까울 때만 진보적이라 칭하고, 거리를 둘 때는 제도화됐다거나 진보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전혀 합당치 않다.
여성단체들의 진보성을 가늠하는 잣대는 과거와 현재 한국사회의 변화를 통찰하면서 어떤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가, 그 활동이 어떤 사람들을 대변하는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가와 관련이 있다. 가령 10년 전 단체활동의 구체적인 목표와 이슈가 10년 후인 지금과 같거나 비슷하다면, 이 단체는 10년 가량 정체돼있는 것이며 그만큼 보수화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최근 수년 간 호주제 폐지운동과 건강가정기본법을 둘러싼 여성단체들의 행보들, 여성단체들이 전개하는 평화운동, 통일운동, 그리고 17대 총선을 둘러싸고 전개된 여성정치세력화 운동 등에서 그러한 조짐을 보게됐다. 여성주의가 경계하는 생물학적 여성론이나 가족주의, 모성담론, 전체주의 등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이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진,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단체 혹은 활동가들이 생겨나면서 상대적으로 기존 단체들의 정체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여성들의 권리문제에 있어서도 타 사회진영들이나 정부 혹은 정당이 제기하는 이슈보다 문제 제기하는 속도 혹은 수위가 낮을 때, 개별 여성들이 문제제기하는 절실함에 다가가지 못할 때,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관련 깊은 낙태,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와 같은 법, 혼인제도, 사회규범들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거나 이슈가 불거졌을 때조차도 입장 표하기를 꺼릴 때, 황우석 사태와 같이 여성인권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는 사회적 사안에 대해 대응하기를 언론들보다도 더 몸을 사릴때, 여성빈곤과 비정규직화를 가장큰 당면과제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천적 활동으로 녹여내려는 고민과 시도가 턱없이 부족해보일 때, 여성단체의 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단체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들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거나 심지어 설득력이 부족할 때, 단체 홈페이지의 배너로 장식되거나 언론사 측의 사진 한 컷으로 담길 수위의 캠페인 이상의 방식이 고민되지 않을 때, 단체에서 내건 기치들이나 이를 활동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많은 여성들에게 "(와닿지 않고) 진부하다"는 평을 들을때, 변화해가는 여성들의 삶의 모양새와 의식수준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성단체가 보수화되고 있다, 낙후되고 있다, 여성주의적이지 못하다, 여성들의 삶과 멀어지고 있다, 운동단체가 가져야 할 급진성을 잃고 있다, 등의 판단을 하게 된다.


논제 2> 제도화의 물살을 탄 여성단체

1) 제도권과의 관계 맺기
상당 수 여성단체들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며, 각 영역별 주제별로 분류되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진행한다. 쉼터와 상담소의 경우는 많은 수가 이 같은 지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고, 지원이 없을 경우운영이 더 이상 어려워진다. 그런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NGO를 지원해주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정부 혹은 지자체가 추진하는, 혹은 수용할 수 있는 이슈와 활동에 한정된 것이다. 운동조직은 적어도 GO의 정책이나 관점보다는 급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재정적인 의존도가 높으면 조직의 활동이 GO의 수용 테두리 안에 제한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정부로부터 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지원 받던상담소 혹은 단체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가 정책의 주된 내용을 바꾸자, 그에 맞춰 다른 이름을 걸고 다른 내용을 내세워 기존의 활동을 바꿔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또 '출산장려' 정책을 펴고 있는 정부의 성향에 맞게 여성의 권리 이슈를 '출산장려'와 맞물려 제기하면서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한 방향인 듯 활동을 펴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단체들 중에는 운동단체라기보다 '여성을 위한 복지서비스센터'나 '사회적 기업' 정도의 성격을 갖게 되는 곳도 있으리라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도 우려가 되지만, 보다 반여성적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GO에 대한 재정 의존도와 '프로젝트' 사업이 갖는 위험성은 그것이 단체 활동가들의 인건비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활동이 어떤 점에서 가치를 가지며, 어떤 점에서 필요하고, 어떤 영향을 가져 올 것인가, 장기적인 비전은 무엇인가, 또한 활동가에게 어떤 동기 부여가 되는가, 이 같은 물음을 던졌을 때 별로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 단체 활동가들 먹여 살리기와 단체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라는 두 가지 과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GO에 대한 재정의존도는 장차 단체의 운동성을 상실하거나 퇴색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

2) 여성단체 출신 정부관료와 정치인
운동단체는 정권이나 정부의 각 부처, 정당으로부터 적정 거리를 두어야 비판과 지지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운동단체로서의 진보적 성향을 퇴색시키지 않고 급진성을 가질 수 있으며, GO와 NGO 상호 간 발전 가능한 토대도 만들 수 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시민단체에서 오랜 활동을 해 온 인물들이 정부관료로 발탁되거나, 정당에 영입되어 국회로 진출하는 일들이 생겨났고 이에 대해서 시민사회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여성운동진영만큼 눈에 띄게보이는 경우도 드물다.
특히 17대 총선을 앞두고 여성운동진영이 벌인 '여성 100인 국회 보내기 운동'은 그 동안 보수적 여성단체와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해왔던 '할당제' 요구와 맞물려 여성단체들 자체 인맥이 있는 인사들을 정당에 예비후보로 추천함으로써, 여성운동진영이 운동단체로서 가져야 할 긴장감을 놓아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게 됐다. 게다가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의 대표들이 자신의 본분을 저버린 채 잇달아 조직의 규약을 어기면서까지 정당 행을 선택함으로써, 여성단체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정계입문의 통로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실추된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렵지만, 이같은 행보가 여성운동의각 진영에서, 각 단체들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단절되었는지도 역시 미지수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경우 정당으로 가버린 전 공동대표에세 "조직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임원에서 해임하고 회원에서도 제명했지만,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경우는 '개인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을 존중하며 조직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을 비공식으로 전했을 뿐이다. 이는 조직의 규율의 문제나, 해당 단체의 일로만 볼 문제가아니라 여성운동진영이 각 조직의대표성이 있는 활동가가 정부나 국회로 자리를 옮기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평가하고 입장과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일이다.


논제 3> 여성운동진영의 지각변동과 '차이'

1) '어떤 여성'인가
사실 기존 여성단체들은 진보, 보수 수식어보다 '주류' 여성단체로 불려지고 있다. 이는 여성단체들이사회에서 주류가 되었다는 점보다는, 기존 단체들의 운동의 구체적 목적과 방법, 그리고 성과로 삼는 지점에서 '비주류'인 여성들의 목소리와 권리가 소외되었다는 지적 때문이다. '주류' 여성단체에 대한 비판은 소위 '비주류' 여성운동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여성운동의 성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제 여성운동진영은 '어떤 여성'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가 여성을 향한 3대 폭력이라 이야기되지만 바로 몇 년 전만해도 성매매 이슈는 여성운동진영의 주된 활동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성매매공화국이었음에도 말이다. 또한 성폭력특별법이 제정, 개정되는 과정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여성인권의 화두, 그 담론이 확산되었지만 동성 간 강간 등 아직 범죄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등 묻혀 있는 영역들이 있다.
장애여성, 레즈비언, 가족 밖의 여성, 노숙인 여성, 이주여성, 탈북여성, 아동여성, 십대여성, 노인여성 등이 기존 여성단체들의 운동대상에서 '비주류' 위치에 놓였던 여성들이다. 여성단체의 활동이 비주류 여성들을 소외시킨다는 지적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단체가 반드시 비주류 여성들 대상의 활동을 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단체가 지향하는 바와 입장들, 활동하는 이들의 생각과 활동의 내용과 방식 전반에 있어서 '관점'의 차이로 드러나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를 둘러싸고 '가족 밖의 여성'들의 권리문제가, 가족 내 남편과 아내의 권력구도 문제보다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난 것이 한 예다.
사실 여성단체가 이들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거나 활동에서 부차적으로 취급했다면, 그 단체는 비장애여성을 위한 단체, 이성애자 여성을 위한 단체, 어머니 혹은 아내 정체성을 가진 여성을 위한 단체라고 표명하고 있어야 정직한 일이다. 이제라도 누구의 권리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솔직하게 돌아보고 평가를 해보아야, 앞으로 여성운동의지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가능하고 발전적인 방향을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무엇'이 여성이슈인가
사회 양극화와 여성의 빈곤, 급물살을 탄 여성비정규직화는 다수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단체들이 존재해도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 활동을 펴는 단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기존의 노동운동에 대한 양대 노총 중심의 경직된 이미지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로서의 여성단체와의 관계설정이나 역할설정, 위상에 있어서의 갈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여성운동진영이 노동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그 권리를 대변하고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해결해나갈 단위는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의 현실로 보아선 양대 노총중심의 노동운동진영은 아닌 것 같다. 노동운동진영에서는 여성노동에 대한 관점조차 채 자리잡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권리는 계속해서 밀리는 사안이었고, 이에 대응을 해나갈 운동단위 혹은 활동가들은 손에 꼽히는 정도였다. 노동시장에서의 열악한 여성의 위치와 '여성노동'의 심각한 폄하 문제는 무방비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일 정도다.
여성들의 삶에서 폭력의 문제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듯이, 노동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분화된 이슈를 파고들어 전문성 있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들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과의 연계성을 파악하고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여성단체가 여성노동단체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노동하는 존재로서 여성을 사고하고, 여성노동이슈에 대해 보다 많은 개입을 하고, 권리를 반영하려는 노력을 꾀할 필요가 있다.
여성주의나 여성운동을 사회의 다른 운동진영과 구분해서 제한된 범주로 묶어두는 것은 여성주의나 여성운동 자체에 대한 왜곡이며 편견이지만, 여성단체들조차 어느 정도 그러한 규정을 받아들여 활동영역을 구분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될 때가 있다. 여성들의 삶 가까이에 단체의 관심을 집중시켜보면 지금보다 많은 이슈에 대해서, 사안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방비 증감의 문제나 환경과 생태의 문제 역시 여성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변수인데, 여성주의적 가치관을 통해 이에 대항하는 운동은 기존의 평화운동, 환경운동, 생명운동 등과는 '다른' 목적과 방식과 결과를 낳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언> 여성운동의 발돋움 위해

1) 연합체는 해체하고, 큰 조직은 작아져야 한다
1980년대중후반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여성단체들이 현재 진보적 성향이 무뎌지고 운동조직으로서의 급진성에 의심을 받게 된 상황에서, 앞으로의 발전적 여성운동을 해나가는데 있어 발목을 잡고 있는것은 '연합체'라는 구조와 시스템인 것으로 보인다. 조직의 몸집이 커지면 관료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는 우려 외에도,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구조는 정직한 운동을 해나가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8개 회원단체를 둔 연합체로 되어있으며, '연합'의 이름으로 전국에 6개 지부를 두고 있다. 또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각 지부들은 형식상을 보면 해당 지역의 단체들을 회원단체로 둔 연합체다. 28개 회원단체들 중에서도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25개 지부와 1개 지회를 두고 있으며,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회원단체 2개와 지부, 준지부단체 8개가 있고, 한국여성민우회의 경우 11개 지부가 있다. (각 단체 홈페이지 참조)
'연합체'가 각 회원단체들을 아우르는 대표성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가, 혹은 가져도 되는가, 회원단체들과 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는가, 또는 회원단체들 간의 소통이 되는가, 회원단체들과 넓은 의미에서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각 회원단체들 간 특정 사안들에 대한 관점과 입장이 어느 정도 조율되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보면 회의적인 답변이 나온다.
단체의 활동내용에 있어서 그 실체와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몇몇 단체가 회원단체 혹은 지부나 타 단체들에 권위적이며, 실제로 다양한 목소리와 지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진영이 한목소리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 결과적으로 보다 급진적인 문제의식들이 사장되거나 드러나지 않게 되는 등 여러 가지 폐해가 있다. 적어도 각 단체들 간의 입장의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며, 새로운 지향을 가지고 활동을 해나가는 단체들이 새로운 여성운동, 다양한 여성운동진영을 형성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려면 현재의 전체주의적 구조는 해체돼야 한다.

2) '중앙-지부' 아닌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지부단체를 두고 있는 단체들의 경우도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단체와 서울에 있는 '본부'단체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지부 단체들의 경우 각 활동의 내용이나 방식이 서로 다르고, 그에 대한 지역의 평가도 상이한 경우, '중앙-지부'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점검이 필요하고,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실제로 제기되는 위계의 문제도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방식과는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연합체'와 회원단체, '중앙조직'과 지부, 등과 같은 조직형태가 아니라, 단체들은 관점이나 사안에 따라 보다 더 긴밀하게 연대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며 교류해나가야 한다.
여성운동의 씨앗이 자리하기 어려운 척박한 지역 분위기 속에서 기존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나 지원을 받고자 새로운 여성운동단위들이 특정 단체의 '지부'가 되기를 원하는 경우들이 있지만, 지지와 지원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단체는 그 자체 활동으로 평가를 받아야지 '이름'의 힘을 빌어오는 것은 정직한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그러한 '이름'이 사회적 신뢰도를 잃을 경우, 다른 단체들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3) 운동방식과 내용이 여성주의적인가 성찰하자
많은 여성단체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어떤 단체들은 내부 민주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기도 하며, 또 어떤 단체들은 운동의 목적이 여성주의적인 관점을 반영한다기보다 다른 목적 하에 여성들이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존에 여성운동의 방향으로 설정했던 사안이라 하더라도 지금 과연 그것이 여성들의 권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또 다른 차별의 문제를 생성하는 것은 아닌지, 간과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는 이슈들도 있다.
시민단체들 중에 어려운 재정상황을 극복해보고자 관례상 '이중장부'를 운영해왔던 방식이라든지, 활동이 아닌 명망 위주로 단체의 대표급 인사들을 배치한다든지, 시민들을 상대로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조직 보위'의 문제가 여성단체 내에 있다면 이제는 돌아보아야 할 때다. 특히 단체 내부에서도 활동을 하는 주체들 간 위계나 민주적 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해당 단체가 다른 많은 여성들과 소통하고 눈높이를 맞추고 권리를 대변해주기를 바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 소수자 여성의 시선을 반영해야한다
여성운동진영은 보다 '비주류'인 여성들의 권리에 주목하고 소수자 여성의 시선을 활동에 반영해야 한다. 그것은 비주류인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찾기를 할 수 있는 자원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들의 목소리와 배치될 경우 여성단체의 활동이 그대상이 되는 여성들보다 더 열악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의 권리를 차별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운동의 목적이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것에 있다면, 가부장제가 가장 억압하는 대상에 주목하고 이들의 인권을 대변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호주제가 여성들의 권리를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라는 것에 주목하여 호주제 폐지운동을전개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현재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운동으로 제한되어선 안 된다. 여성억압의 근원인 가부장제에 저항한다면, 우리 사회의 혼인제도와 가족주의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간과할 수없으며, 그렇다면 그 제도로 인해 내쳐진 사람들의 존재에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이들의 인권을 중심으로 운동의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5) 여성주의 이슈 확대하고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성운동진영은 여성인권을 뚜렷이성별로 가시화된 사안에 한정시켜선안 되며 지금보다 더욱 확장해나가야 한다. 성차별이 나이차별, 장애인차별, 타민족에 대한 차별, 동성애자차별 등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인권침해와직간접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 개인이 겪는 차별의 문제역시 하나의 고리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여러 개의 고리를 함께 풀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기반으로 각 문제의 고리들이 갖는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들, 전체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권위주의, 물질만능주의, 급부상하는 '국익론' 등이 전체 지형을 여성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게 막고 있다는 점에서, 가부장제와의 연관성을 읽어내고 여성들의 관점으로 분석해 그에 대응하는 담론을 만들어내고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6) 활동가의 여성주의 마인드 키우자
여성운동은 많은 부분 활동가 자신이 여성으로서 정체화하고 여성인권 현실에 관심을 갖고대항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각자 가지고 있는 관심사나 사고관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활동가들이 실제 운동을 해나가면서 자신이 겪은 성차별이나 인권침해, 혹은 관심을 두고 있는 특정 사안만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조망하고 차별이나 여성주의적 가치관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배우면서 문제의식을 확장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여성운동조직 내에 활동가들이 활동을 통해 여성주의를 습득하고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상시적으로 타 단위의 활동가들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이슈에 대해 서로 배우고 전문적인 활동지식을 교류할 수 있을 때 훨씬 발전적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반드시 모든 활동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특정 시간대에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으며 단체의 활동방식과 활동가들의 의지에 맞게 짜여질 필요가 있다.

7) 단기적, 가시적 성과주의 넘어서자
운동단체가 시스템을 갖추고 규모가 커나감에 따라, 성과주의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성운동조직의 활동이 구체적인 방식을 정하고, 기간 별로 점검하며, 그 과정과 성과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각기 다를수 있다. 운동의 성과가 가장 눈에 띄는 경우는 법조항이나 제도를 바꾸는 것이며, 단체활동이 언론에 가시화되는 것, 혹은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았을 때 등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혹은, 그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운동의 진정한 성과는 비가시적인 경우가 많다. 법과 제도를 손질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왔는데, 법과 제도가 마련된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는 수그러들지 않을 때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방향설정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특히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한국사회의 특수성 상 이러한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시민들의 여론이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활동의 과정에서 많은 당사자들의 참여를 얻어내고 조직화까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이슈나 방안이 나오지 않아 주춤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만약 여성운동의 주체들이 지금 여기까지를 주된 성과로 평가해버리고 훨씬 더 어려운 실천들을 '나머지' 정도로 여긴다면 곤란하다.
여성운동은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와 삶의 권리와 자존감의 정도를 가늠해본다면, 아직 성과를 크게 자랑할 단계는 아니다. 역차별 공세가 심각해지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사람들의 삶 속에 '평등'이 녹아들고 여성주의가 숨쉬게 하려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더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제기와 방식들, 그리고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겉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기적,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것에 관심을 둔다면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다. 운동은 그 기본 목적과 지향하는 사회, 그리고 진실성을 늘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

8) 여성정치세력화 방향설정 필요하다
'여성 국회 보내기 운동'으로 불거진 여성운동의 방향에 대한 여러 가지우려점들에 대해, 여성운동진영은 입장을 확실히 할필요가 있다. 먼저 여성운동이 남성중심 정치판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데 있어서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과, 여성정치세력화라는 화두를 생물학적 결정론의 함정에서 꺼내오는 것과 더불어 정치영역에 있어서 엘리트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여성정치세력화는 여성을 위한 정치실현에 있지, 소수 여성들이 성공하는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의 정치 개념으로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주로 어떤 분야에 여성이 처음 발을 디뎠거나, 어떤 직급에 여성이 처음 올라선 것, 전문직종에서 여성비율이 증가하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갈수록 극성스러워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인권의 지표는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정치세력화 방향은 역할모델로서의 여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기회와 평가를 공정하게 접할 수 있는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 맞춰야 한다.

9) 지역으로, 여성들의 가까이에
여성주의는 운동의 방법론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거칠게 이론을 이야기하고 선언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삶에 천착해서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하는방식이다. 지금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여성들이 삶에서 겪는 차별들, 권리를 위한 실천들, 그것이 주입되거나 암기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가까이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운동이 개입하는 것이다. 여성운동이 지역운동으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만약 여성들 다수가 여성단체의 활동이나 방식이 자신의 삶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들로부터 점점 더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진다면, 혹은 단체가 더 이상 어떠한 구체적인 이슈와 활동을 펴나가야 할 지 난관에 봉착했다면, 그것은 여성운동조직이 여성들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닌지 거리를 재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들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서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어보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 이것은 보수화, 제도화, 관료화의 위기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힘을 기반으로 보다 성장하는 여성운동을 전개해나갈 수 있는 방향과도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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