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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4 16:35:10
kwsi
한국 사회운동 위기론을 넘어 : 지역/여성의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위기론


[한국사회포럼2006] 특별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임.



한국 사회운동 위기론을 넘어 : 지역/여성의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위기론

허성우 / 대전여민회  

2006년 한국 사회포럼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운동은 위기인가? 위기라면 왜 위기이고 아니라면 왜 아닌가? 그리고 위기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를 화두로 삼고 있다. 나는 이 토론에서 한국 사회운동 위기론을 ‘지역’에 살아가는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시각을 통해 재해석하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지역’과 ‘지역/여성’ 의 ‘경험’을 통해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첫 번째 논의에서 한국 사회운동 위기론의 대표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둘째, 이 사회운동 위기론들을 지역/여성의 경험에서 재해석하면서 이 위기론을 해체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위기론 극복의 대안으로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을 제안하고 몇가지 논제들을 통해 이론적/실천적 과제들을 생산함으로써 위기론을 재구성한다.


1. 글머리에: 개념정의

‘지역’이란 어디인가, ‘지역’이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는 중앙:지방, 중심:주변이라는 강력한 공간적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여기서 지리적으로 중앙-중심은 수도권으로 지방-주변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으로 이해될 수가 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중앙’은 ‘지리적’공간을 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수도권에 존재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력을 독점하는 특정한 권력집단의 연결망 혹은 공동체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물질로서의 권력을 표상하는 ‘담론적 공간’이다. 나는 여기서 이 중앙이라는 ‘담론’에 ‘지역’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짝지운다. 누군가 ‘수도권’이 아닌 ‘지방’출신이라고 말할 때 화자와 타자가 동시에 그 안의 공간적 위계질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수도권이나 서울도 지리적으로 하나의 지역이며, 그 거대한 지역 안에 설명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살아간다. ‘지역’은 여기서 사람들이 터하고 살아가는 일상의 지리적 사회적 공동체 개념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 사회 지배담론/권력은 중앙수준에서 생산되어 왔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최근 한국 사회운동의 위기론 역시 ‘중앙’의 담론이라고 보며, 이것은 나의 지역에서의 경험을 통해 재구성한다.

왜 지역/여성인가?

왜 ‘지역여성’이 아니라 ‘지역/여성’인가. 나는 이 토론에서 한국 사회운동 위기를 분석하는 데 있어 ‘지역’이라는 변수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여성이 아니라 지역/여성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사회운동위기론 분석에 있어 지역과 여성이라는 두가지 요소들이 상호일치하는 측면도 있지만 상호충돌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역/여성’의 눈으로 한국 사회운동 위기론의 중앙중심성과 남성중심성을 재해석한다.  

‘경험’과 ‘객관성'

나는 대전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았으며 이 지역에서 80년대부터 학생운동과 여성운동에  관여해 왔으며 90년대 이후에 여성학 연구자로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병행해 왔다. 이런 내 경험의 부분성(partiality)과 특수성(particularity)을 인식한다.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에서 개인은 주관적 ‘경험’은 객관성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나는 여성운동가로서 그리고 여성학자로서 여성들의-하나의 소외된 사람 혹은 집단으로서-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새로운 사회적 사실과 진실을 구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오래동안 배우고 경험해 왔다. 페미니스트 연구에서 개인은 자유주의적 의미의 도구적 원자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서의 개인’이다 (Lister 1997). 그러므로 개인의 경험은 동시에 불가피하게 집단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내 ‘경험‘이 갖는 집단성을 의식한다. 기존 담론/이론/정치학이 재현하고 있지 못한, 혹은 대표하고 있지 못한 경험을 드러내는 것은 새로운 담론/이론/정치학 구성의 출발이다. 기존의 이론/담론/정치학이 배제하고 있는 개인의 경험을 드러내고 포함하는 것은 모든 진보적 지식 생산의 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사회운동, 여성운동, 시민사회의 범주

이 글에서 내가 사용하는 사회운동, 여성운동과 시민사회는 진보 사회운동, 진보 여성운동, 그리고 진보적 시민사회를 일컫는다. 이는 한국 진보 사회과학 연구와 사회운동 담론에 등장하는 사회운동, 여성운동와 시민사회는 주로 진보적인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단체들-예컨대 대표적으로 사회포럼에 참여하는 단체들과 같은-, 그리고 이 사회운동단체들이 개입하는 시민사회의 영역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운동의 범주는 주로 시민운동과 여성운동 영역에서의 경험에 토대를 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 사회운동, 여성운동, 시민사회는 기본적으로 동질적이고 단일한 범주가 아님을 인식한다. 예컨대 한국 사회운동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로 구성되어있고, 그리고 보수적인 사회운동을 포함한다. 혹은 남성중심적 사회운동과 그것과 연대하되 충돌하는 여성운동조직을 포함한다. 여성운동은 진보여성운동과 보수여성운동, 그리고 진보와 보수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다양한 여성집단들을 포함한다. 시민사회 역시 진보적 사회운동조직외의 보수적 사회운동조직들, 자원봉사조직들, 비정치적 시민결사들, 다양한 지역사회 연결망과 학교, 언론과 나아가 시장적 부분을 포함한다.

사회운동, 여성운동, 시민사회 앞에 ‘진보’라는 표현을 생략하되, (왜냐하면 화자에게는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실상 진보적인 부분을 의미하는 범주화는 현실에서는 진보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사회적 힘들을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진보운동‘권’ 이라는 특정한 공동체 내부에서 통용되던 ‘진보’가 생략된 범주화는 진보운동권이 아닌 보다 더 큰 공동체들이나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한 담론 상에서는 수정되어야만 하고 ‘진보’의 부분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진보’의 부분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 동시에 ‘진보’가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그 의미가 전환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의 말미에서 ‘진보’운동담론이 ‘진보’의 외부에 존재하는 시민사회 집단들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고 포함하며 이들과 소통과 연대 혹은 단절의 정치학/전략을 구사하는가가 ‘위기론’ 탈출의 주요한 관건이라고 본다.  


2. 최근 한국 사회운동의 위기론의 핵심

최근 사회운동 위기론은 다음의 네가지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1)포스트민주화, 신자유주의 시기에 있어 사회운동의 대응 불투명성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확립되어 감에 따라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정치적 공간의 축소는 동시에 사회운동 공간의 축소화를 결과한다. 사회운동에 의해 제기된 아젠다들이 제도화되면서 운동의 아젠다 생산이 고갈되고 있으며, 사회운동 지도력들의 개별적인 민주정부에의 유입은 운동의 지도력을 좀먹고 있고 운동세력의 ‘영향의 정치’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김정훈 2006). 즉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운동 주체와 운동 내용의 위기와 연관있다는 인식이다. 사회운동에서 제기한 아젠다들이 제도화되어 가면서 발생하는 더욱 분명한 위기는 민주주의의 이중적 과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1970년대 이후 탈식민국가의 민주주의 과정은 지구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 정책으로서의 지구화 전략의 영향 하에서 이뤄졌다 (Rai 2002). 즉 민주화는 정치의 자유화일 뿐만 아니라 시장의 자유화를 의미했다 (조희연 2006). 한국 진보사회운동은 열려진 정치적 민주적 공간에의 개입을 통해 제도권 권리들을 확보하는데 일정하게 성공했으나 이로 인해 그 정치적 영향력을 감소시킨 반면, 민주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질서에는 성공적으로 개입하지 못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들의 발전주의 정책을 계승한 것으로서 여전히 발전과 성장을 위해 인권과 복지, 분배의 문제는 차선의 과제로 남는 체제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 정부집권세력과 그를 지지하는 사회운동 세력은 신자유주의 개발동맹의 일부를 구성하며 그 보수적 변형을 보여준다(최장집 2006). 즉 포스트-민주화 시기의 변화한 사회정치적 조건과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결과들에 대한 진보사회운동의 대응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위기론의 핵심이다.

2) 여전히 강고한 보수 세력기반의 존재

한국 사회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공고화되어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이 관측된다. 이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에 대한 의식은 두가지 방향에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공고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위기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적인 언론, 정당과 보수 사회세력 혹은 사회운동 (예컨대 노령층의 반공주의적 공격과 뉴라이트의 보다 실용적인 공격)으로부터 민주정부에 대한 공격이다. 대다수 국민들도 이 양자 혹은 이 양자의 중간에 각각 분포되어 있다. 이 양자 중 진보 사회과학자와 진보 사회운동이 염려하는 것은 후자의 동향이다. 그것은 한국 보수주의가 갖는 특성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통상적으로 진보는 사회주의 정치학에 영향을 받은 흐름이고 보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흐름이다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등). 한국 보수의 특징은 ‘반공주의-안보상업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깊이 내재화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홍덕률 2003:51-2). 이 반공주의(엄밀하게는 반북주의) 라는 특징적 보수 이데올로기는 합리적 관점에서 토론과 협상을 통해 풀어갈 수 있는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색깔론’으로 접근함으로써 정치적 민주화를 지체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한국 보수주의의 특징은 구조적으로 분단이라는 역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박정희체제라는 권위주의와 개발독재주의의 비민주적 전통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의 한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진보 사회운동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강고한 보수 정치세력을 발견하며 이 강고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를 묻는다 (최장집 2002).
여전히 강고한 보수세력의 영향력에 대한 우려와 함께 또 하나의 새로운 요소는 최근 새롭게 조직되는 신보수운동에 대한 염려이다. 예컨대 뉴라이트의 조직, 새로운 보수, 젊은 보수등과 같은 보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이는 진보 사회운동은 약화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과 비교되며 동시에 집권세력에 참여한 개혁세력의 보수화와도 비교된다. 진보 사회운동 담론은 상당한 정도의 민주주의의 성숙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 보수의 힘이 이렇게 강고하며 시민사회에도 보수세력들이 더욱 새롭게 조직화되는가 하는 것을 묻는다.  
    
3) 풀뿌리 대중으로부터의 지지가 빈약한 진보사회운동

사회운동 위기론의 세 번째 핵심은 이른바 진보 사회운동과 대중 관계의 위기성이다. 이 주제는 대단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90년대를 거치면서 ‘시민없는 시민운동’과 노동조합조직율의 감소는 한국 사회운동의 한 특징을 말해주는 것이 되었다. 그간 소수 엘리트 중심의 시민운동의 한계와 대중과의 관계를 광범한 대중적 관계망을 통해서보다 언론을 통해 만들어 온 한계들이 이미 널리 인식되어 왔다. 특히 민주화 이후 3개의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운동의 대중적 영향력은 일정하게 추락해 왔다. 진보 운동 지도력의 정치진출로 인해 일반대중들이 진보운동을 정치권력의 일부가 되었다고 인식하며 이들의 정치적 무능으로 인해 대중들은 진보운동을 더 이상 대안적 세력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90년대 초반 이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진보 사회운동에서 풀뿌리운동과 조직화에 관한 관심은 급증했다. 그러나 진보 사회운동 담론이 주장해 온 풀뿌리 조직의 성장에 걸맞는 실제적 결과는 뚜렷하지 않다. 한국 진보사회운동은 주로 실무자 중심형 조직이며 회원중심형 조직을 많이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김정훈 2006). 지역과 온라인 상에서의 소규모의 커뮤니티들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대부분 진보 사회운동 영향력 바깥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 회원들을 확보한 풀뿌리 조직의 부재로 진보 사회운동과 광범한 대중들과의 소통을 언론을 통해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결과 언론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점차 증가해 가고 있다.

4) 운동내적 위기들
위 세가지 요소보다 더욱 중요하게 진보사회운동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기적 요소이다. 첫째, 무엇이 진보성인가 하는 진보 운동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이다. 진보운동의 정체성에  혼란은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의 붕괴와 개혁을 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진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즉 10년전부터 시작되었다. 맑스주의의 재구성과 재적용, 포스트 맑스주의, 탈근대주의 사상들이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통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운동과 연관해서는 신사회운동론과 시민사회론들이 소개되었고 이 이론틀로 한국사회를 설명하고자 하고 또 그 서구이론들의 한계가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 작업들이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 얼마나 읽혀지고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그리고 활동의 내용과 방식의 변화에 기여했는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최근 진보 여성운동의 경우, 스스로 무엇이 진보성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정현백 2002). 그리고 운동의 새로운 실천을 열어나갈 수 있는 담론의 빈곤을 위기로 파악하고 있다(윤정숙 2004). 현재 진보 사회운동은 ‘진보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진보’와 ‘보수’간의 차이도 상쇄되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무엇이 진보운동이 ‘잃어버린 진보성’ 이며 무엇이 진보운동이 ‘새로 찾아야 할 진보성인가? 지역의 한 활동가는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도 시원하게 답을 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답답하다. 그러므로 위기다.  

또 하나의 위기는 재생산과 관련된 문제이다. 활동가들은 고령화되고 있고, 젊은 활동가들은 더 이상 학생운동에서 배출되지 않으며, 지도력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남아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많은 일과 생활고에 지칠 뿐 아니라 재교육과 재훈련 기회조차 가지기 어렵다. 최근 새로 충원되는 활동가들은 NGO에 직업을 가지려는 목적으로 가진 세대로 운동에 헌신적인 전 세대와 구분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숙련된 활동가가 결원이 되어도 특정한 프로그램과 조직이 휘청거리는데 새로운 활동가 충원의 풀은 어디이며 늘 정신없이 바쁜 기존 활동가들의 재충전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 역시 오래된 위기적 질문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아직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묻고 있을 뿐이다. 위기다. 또 다른 문제는 특히 오랫동안 활동해 온 활동가들의 삶의 비전의 문제이다. 많은 경우 진보운동에 투신했던 지도자들이 민주정권에 유입되는 것을 보면서 진보운동의 활동가로서의 삶의 귀결은 결국 정당인이거나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가를 묻게된다. 특히 여성운동의 경우, 여연의 지도자들 중 대부분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해 갔다. 이것은 제도정치에의 진출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출구가 하나인 것처럼 보일 때, 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이것은 일종의 위기의식을 선사한다.


3. 사회운동 위기론의 지역/여성 경험을 통한 재구성

위에서 지적한 네가지 사회운동 위기론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를 다시 살펴보겠다. 하지만 나는 앞서 본 것과 달리 순서를 거꾸로 하여 다시 살펴본다. 첫째, 운동내적 위기, 둘째, 풀뿌리 대중으로부터의 지지의 위기, 셋째, 보수세력의 강고함의 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스트-민주화와 신자유주의 시기에 있어 사회운동 대응의 위기를 논의한다. 나는 앞의 세가지 위기는 나의 지역/여성운동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2006년 지금 이 특정한 시기에 나타난 새로운 ‘위기' 가 아니라 이미 80년대 민중운동 시기부터 있어 왔던 오래되고 친숙한 위기라고 본다. 그러나 이 오래된 서로 다를 수 있는 위기들이 하나의 위기적 ’국면‘ 혹은 위기의 ’다발‘로 나타나게 된 것은 첫 번째 위기의 요소가 다른 요소들을 구조적으로 형성하며 강화시키는 동인을 가졌다고 본다. 즉 첫 번째 위기야말로 민주화 이전의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특징이면서 오래된 사회운동의 위기를 수면위로 끌어올려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 오래된 위기, 오래된 질문들

(1) 운동의 정체성과 활동가 재생산의 위기

여성운동의 경험에서 보면 이 위기는 오래된 위기였다. 민주화 이전 여성운동은 민중운동, 사회변혁운동의 부분운동으로 인식되어왔다. 여성운동활동가들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운동과 삼민주의(민족․민중․민주) 정치학을 공유하되 여성해방의 문제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사회운동과 ‘따로 또 같이’해 왔다. 80년대 수도권 여성운동 활동가들 내부에서 전통적 맑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과의 이론논쟁이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여성운동은 사회변혁과 민주화라는 사회운동의 임무에 충실해 왔다. 여성해방의 정치학은 사회변혁이라는 대 목적 아래서 충분히 무시되어 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나의 초점은 사회운동의 가부장성을 말하려는 것 보다 여성운동이 사회운동과 동일한 정치학 내에서 움직여 왔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나는 진보 여성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민주화 이행 이후 바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민주화 이후 사회주의 붕괴기에 여연은 향후 여성운동의 정치학의 향방을 둘러싼 정책수련회 등을 기획, 사상적인 혼란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여성운동이 민중운동인가 시민운동인가, 혹은 사회주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공동 인식의 기반을 만들지 못한 채 논의는 끝난 듯 하였다. 이 시기 대전여민회 활동가들은 이런 토론조차도 가져보지 못하였다. 서울에 있는 여연과의 제한된 의사소통 그리고 지역시민사회 내 사회주의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진전이라는 문제를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지식공동체의 부재로 지역 여성활동가들은 사상적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 여성운동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고 민주적인 제도변화를 받아들이는 문제도 혼란스러워 하였다. 김영삼정부의 ‘세계화’ 정책을 통해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부정적 영향을 깊이 알게 되기 전에 퍼진 ‘지방화와 세계화’ 혹은 ‘세방화’ 같은 담론들은 지역 여성운동에 무엇을 의미하였던가는 물어진 적조차 없다. 여성운동은 포스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이 일부로 알려져 있지만, 이와 함께 여성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한 여성민중 부문은 여연과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졌다. 남성중심적 사회운동의 가부장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가부장제를 하나의 변혁해야 할 근본적인 사회구조로 보는 페미니즘 인식이 여성학 피교육자들을 중심으로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운동을 사회운동의 일부로 보는 80년대의 입장을 그대로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남성중심적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의미의 가부장제 변혁운동으로 혹은 그와 다른 제3의 어떤 운동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90년대 초반 이후 여성운동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논쟁은 유보되어져 왔다.  

활동가 재생산의 위기 역시 오랜 위기다. 대전의 경우, 학생운동의 역사는 수도권에 비해 짧고 층이 얇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되 수도권 이외 대부분 지역에서 상황은 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운동은 이미 90년대 초중반부터 동력을 잃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대전 진보여성운동의 경우, 주요한 여성운동 활동가 재생산을 담당해 왔던 학생운동 내 여성학동아리들이 정체성을 잃고 해체되면서 여성운동 활동가 충원은 90년대 중반부터 한계에 달했다. 90년대 나타난 대학 내 여성학 공부 등을 통해 페미니즘과 탈근대주의 지식등 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새로운 페미니스트 그룹들의 형성은 수도권적 현상이지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한 전국적 현상은 아니다. 지역 지식사회의 지적 인프라의 빈약함으로 활동가들의 재교육시스템은 부재한 편이며, 활동가들은 바빠서 공부할 틈이 없다(그렇다고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교육모임에 오는 것은 더 힘들다). 민주화이후 활동가들은 각종 프로젝트 신청과 보고, 진행에 더욱 바빠져 지역의 한 활동가는 혹시 여성운동단체들이 여성행정부 지원체계가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활동가들의 지도력과 비전 찾기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요원하며, 여성운동에 필요한 지적 훈련을 받은 활동가들을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2) 풀뿌리 여성대중으로부터의 지지의 부재

여연은 창립초기부터 다양한 여성대중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90년대 초반 이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지역여성 풀뿌리 조직의 중요성은 많은 관심을 끌어왔다. 다양한 지역 풀뿌리 조직에의 시도도 있어왔고 여연의 지역조직들은 양적 질적인 면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지역여연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있는 여연의 지역조직들은 대중조직이라기보다는 활동가조직에 가깝다. 풀뿌리조직은 동네단위의 일반 여성들이 참여하여 만들고 생활상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는 일상적인 모임들이다. 예컨대 내용적으로 상명하달식 조직으로 되었지만 통단위 새마을 부녀회 같은 조직이 형식상으로는 이런 풀뿌리에 가까운 조직이다. 풀뿌리조직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활동할 수 있지만 늘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지는 않는다. 즉 정치조직과 대중 풀뿌리조직은 구분된다. 이런 면에서 여성운동조직이 정치적인 이슈를 끝없이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갈 때 이 방식은 풀뿌리여성을 조직하는 데에는 제약을 가진다고 본다. 풀뿌리조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정치적 이슈를 다뤄나가는 것은 활동가들에게는 두 마리 토끼잡기이다. 대전여민회가 수백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반면, 3만의 회원을 거느린 아파트나 통단위 등 풀뿌리에는 새마을부녀회가 기능한다. 새마을운동조직(부녀회를 포함)과 같은 개발주의 입장에서 선 주민조직들을 거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지역단위에서 아직도 건실하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전에는 통단위 부녀회 조직이 행정단위에서 지역 여성을 대표하고, 국가 행정조직의 정책 설명회에 대표로 참여한다. 동네단위의 상호부조 행사에서 온갖 뒷수발을 하며, 그 댓가로 지역 정치사회로부터 일종의 권력을 부여받는다. 진보여성운동 활동가들은 사무실에서 활동해야 하므로 동네 아줌마들과 이야기하고 살 시간이 없다. 그많은 여성대중은 사무실로 불러 모으기에는 너무 많은데 활동가들에게 사무실 일은 너무 많다.  

중앙의 페미니스트/ 여성정책 담론에서는 젠더주류화가 유행어처럼 되고 페미니즘은 대중적인 담론이 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에 사는 일반여성들은 페미니즘을 거의 알지도 못하고 변화된 많은 여성정책을 알지도 못한다. 민주화이후 여성운동이 이룩한 법제개정운동은 지역여성대중에게는 너무 먼 일이다. 이렇게 진보여성운동이 지역 풀뿌리 수준에 연결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오래된 위기다. 이것은 이미 박정희 개발독재에 의해 지역 여성들이 대규모의 의사풀뿌리 조직으로 동원되고 지배된 이래, 진보여성운동은 풀뿌리 수준에 몇걸음도 다가가지 못한 현실이다. 민주화가 되었지만 지역사회는 여전히 새마을조직과 지역개발조직들에 의해 선취된 채 그대로 남아있다.

(3) 여전히 강고한 보수세력

최근 사회운동 위기론에서 “여전히” 강고한 보수세력의 존재가 우려와 함께 거론되는 것은 일상에서 보수적인 지역조직들의 현존과 실상을 늘 보아온 나에게는 이상하고 낯선 말이다. 강고한 보수세력들은 언제나 의연히 거기 존재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간의 역학관계에 관한 한, 나는 진보와 보수를 바라보는 담론이 다분히 중앙중심적인 담론이라고 본다. 예컨대 중앙의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담론이 87년 체제의 성공적 개혁을 말할 때 나는 여기에 일면 동의하고 일면 동의하지 않는다. 대전의 시민들도 87년 6월 투쟁에 참여했고 거기 참여했었던 나는 그 부정할 수 없는 열기를 기억한다. 그러나 동시에 한 줌 밖에 안 되었던 진보운동세력, 이른 바 ‘권’ 이라는 경계로 구획지어지고 거기에 가둬져버렸던 수감의 기억이 더 강하다. 이 지역에서 6월 투쟁은 매우 산발적이고 자발적인 것이었으며 조직화의 정도는 극히 미미했다. 대전지역과 같은 한국에서 5번째 가는 도시에서의 민주화운동세력의 조직화와 활동의 정도를 볼 때 87년의 민주화가 사회운동 세력에 의해 달성되었다는 전제(최장집 2002)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에 동의한다면 무임승차론도 동의해야 할지 모른다. 보수정치세력은 이 지역에서 항상 강했고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과 자민련의 참패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자민련의 잔류파들이 국민중심당으로 다시 모이고, 이들과 연루된 지역 개발 토호들이 시의원과 구의원석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으며, 반면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지역조직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들으면서 이 지역에서 보수는 여전히 지배적임을 인식하게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할당제의 구호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들리기도 한다. 여성 정치 할당제의 혜택은 진보여성운동보다 보수여성단체가 더 많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지역주의/ 지역균열에 기반한 체제이다. 국회와 행정부의 권력은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이것은 민주정부 하에서도 계속되는 현상이다. 지역의 보수세력은 새마을조직과 같은 지역개발조직들에 기반하여 있다. 예를 들면 진보사회운동 조직 구성원의 대다수가 서울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반해, 새마을조직의 서울지역 회원수는 전체의 0.2%에 지나지 않는다(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1999). 이를 볼 때, 새마을조직은 철저히 지역에 기반한 조직이며,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를 잘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세력은 서울이 아닌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생산되고 재생산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전히 강고한 보수세력’의 존재가 민주화의 진전에 위기를 형성한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지역사회에 의연히 존재하는 보수사회에 대한 ‘재발견’에 불과하며, ‘서울’이라는 ‘특별한 시’에서의 경험에 기반한 특정한 담론일 뿐이다.  
2) 오래된 위기로부터 보는 새로운 위기
: 포스트 민주화, 신자유주의 시대의 위기

나는 앞에서 진보 운동의 내적 위기, 진보운동에 대한 빈약한 풀뿌리의 지지기반, 그리고 강고한 보수의 존재가 새로운 위기가 아니라 오래된 위기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오래된 위기들은 새로운 사회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하늘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새로운 것은 부분적으로 새로운 것일 뿐이며,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조합들이다. 즉 새로운 것은 낡은 것과의 특정한 관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87년 체제의 전통에 서 있는 진보사회운동은 오늘날의 새로운 위기를 낡은 위기들과의 관련성을 통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에 따른 진보 사회운동의 공간의 축소와 아젠다의 고갈이라는 위기에 대하여. 예컨대 여성운동의 경우, 민주화와 함께 발빠르게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저항투쟁에서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정치참여 전략으로 전환하였다. 국가 정치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개입은 법 제도의 정비라는 전략으로 나타났고, 이 정치참여전략은 북경의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전략으로 검증되었다. 그러나 여성운동의 사단법인화 등 합법적 공식조직으로서의 제도화와 여성운동 아젠다들의 정책제도화는 최근 페미니스트 진영 내부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운동 내 지도력의 개별적 국가 포섭에 따른 지도력의 손실과 도덕성의 추락, 젠더 정치학의 탈정치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응 부재 등이 그것이다. 내적으로도 87년 이후 제도화와 정치참여라는 전략으로 민주 정부에 개입해 온 결과, 여성가족부의 정책과 제도가 발전하면서 결국 여성가족부의 행정을 지원하거나 혹은 그 행정의 결함을 제기하고 다시 메꿔가는 일을 하는데만 하더라도 엄청난 역량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는 여성운동의 빈약한 풀뿌리적 기반을 고려할 때 소수 전문가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이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중장기적으로 소수의 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예고한다.   한편 정부에서도 적극 동의, 추진하고 있는 북경여성대회의 12개 아젠다 (여성과빈곤, 여성과 교육 훈련, 여성과건강, 여성에 대한 폭력,여성과 무력분쟁, 여성과 경제, 권력 및 의사결정에의 참여, 제도적 장치의 발전, 여성의 인권, 여성과미디어, 여성과 환경, 여아문제)를 넘어선 다른 이슈를 개발할 수 있을까? 이미 주어진 활동의 반경과 이슈들의 범주에서는 운동의 창조적인 역동성이 떨어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 예로 보면, 진보 여성운동의 지역 풀뿌리기반의 부재, 보수세력의 강고함, 민주화 이후 지도력의 누수와 새로운 사상적 대안의 부재 등은 여기서 모두 하나의 패키지가 되어 위기를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상황은 위기적으로 보이지만, 나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극복 가능한 위기라고 본다. 적어도 여성운동의 경우,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에의 집중적 개입이 낳은 문제들은 사회운동이 87년 체제 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회고컨대, 여성운동 내에서 혹은 지역 시민운동 내에서 민주주의의 이행과정이나 심도있는 내용을 배운 적이 없다. 바라던 민주화는 왔고 열려진 합법적 공간을 활용하여 대중적 영향력을 늘려나가는 것이 활동가들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의 전부였다.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분석과 이행론이나 공고화론 조차도 지역 여성, 남성활동가들에게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론이다.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에 이론을 공급했던 것은 진보적인 사회과학자들의 연구인데, 이들이 생산한 지식은 가치 있었으되, 이 지식이 어떤 경로로 유통되고 재생산되었는지 다시 물어져야 한다. 나아가 민주화 이행초기와 90년대에 걸쳐 민주화의 이중적 과정에 대한 이해가 지역 여성운동 내부에 분명하지 않았다고 본다. 지역에서 세계화와 지구화 시대에 지역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말은 반복되었지만 민주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정책을 같이 하고 있다는 인식은 최근에서야 거론되었고 아직도 깊이 인식되지 않는 경향마저 있다. 신자유주의와 지구화에 대한 사회과학계의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지식들이 여성운동 내에 유통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역/여성운동의 경험을 통해서 포스트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부족은 갑자기 발생한 어떤 위기적 상황이 아니라 사회운동(여성운동을 포함한) 내부의 민주화 과정에 대한 낮은 인식에서 기인한 부적절한 전략의 사용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본다. 이 포스트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은 풀 수 없는 난국의 위기가 아니라 풀 수 있는 위기이다. 단지 풀 수 있는 방법이 단시간 내에 하나의 명백한 답으로 주어질 수 없다는 데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고 보겠다.  


4. 위기론을 넘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한국 진보운동은 80년대부터 종종 위기를 역설해 왔다. 위기론은 자주 등장해 왔다. 오늘날 한국사회와 같이 유례없이 깊은 사회변동의 압축적 과정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은 늘 위기다. 위기는 편재하는데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위기를 과장되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순간들이 있다. 운동의 위기론 역시 개인의 삶의 과정과 같은 과정 아닌가 싶다. 편재하는 위기를 바라볼 때 불안한 시선이 있고 편안한 시선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적어도 정치적 억압이라는 물리적 불편을 덜어낸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의 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이를 낯설고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익숙한 삶의 일부로 편안하게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위기는 이미 말했듯 낡은 것과의 길고 긴 인연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몇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 제안은 이론적이고 실천적 측면을 포함하며, 남성중심적인 사회운동과 이것과 겹치되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여성운동을 포함하며, 기존의 중앙중심적 이론/담론/정치학과 지역수준의 그것을 포함한다. 이것이 내가 의미하는 사회운동 위기론의 재구성이다.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으로  ‘포용적 연대’ 라는 개념은 루스 리스터(1997)의 포용의 정치학(Inclusive Politics) 과 나이라 유발 데이비스(1997)의 다른 여성 집단들간의 차이를 인식하되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서 다른 여성들과 대화를 통해 연대하는 정치학 (Transversal Politics) 이라는 두 개념을 한국 상황에 적용하여 합성하고 의역한 개념이다.        유발 데이비스의 Transversal Politics 개념은 국내에 ‘횡단의 정치학’ 이라는 개념으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다 (강선미 2005; 조 형 2004). 그러나 나는 ‘횡단’이라는 의미가 불투명한 직역보다는 유발 데이비스가 강조하고자 했던 의미를 살리는 의역인 ‘포용적 연대’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은 나의 영국 서섹스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사용된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해 몇 군데에서 발표를 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성공회대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포럼 “민주주의 이행기 한국 여성운동 정치학의 재구성: 지역∙국가∙지구적 수준의 분석” 2005.·12.을 참고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의 진보사회운동은 내부의 여러 차이에도 불구, 맑스주의의 영향 하에 놓여있었다. 이것은 강력한 계급 정체성의 정치학이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운동은 1960년대 구미에서 발달한 사회운동적 특징들로 설명되기 시작했고 일정하게 그것은 설득력을 갖는다. 서구의 1960년대 이후의 신사회운동은 계급이외의 계급을 포함하되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다양한 정체성을 추구하는 운동이었다. 80년대의 한국의 사회운동이 계급적 정체성을 우위에 놓고 다른 사회 정체성들을 하위범주에 놓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다르지만 비슷하게 90년대 이후의 각 사회운동의 정체성의 정치학들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정체성들 간의 위계적 질서를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다름의 강조는 차이만을 양산하고 소통을 저지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등장하는 소통과 연대에의 관심은 매우 시의적절한 흐름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페미니스트 정치학에서 제기되는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은 정체성을 정치학을 성찰하고 새로운 소통과 연대를 만드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은 여성운동을 포함한 기존의 사회운동 위기론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은
a. 정체성의 정치학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다.
b. 각 운동 집단들이 갖는 차이를 인정하되 차이를 안고 최소한의 공동의 목적을 향해 가려는 정치학이다.
c. 이것은 차이가 있는 집단들 간의 대화 (Dialogue) 의 정치학이다.
d. 대화를 통해 최소한의 공동목적을 향해 가는 연대의 정치학이다.
e. 그러나 여기서 차이들 간에 긴장이 존재하며 그리고 긴장을 포함한 차이의 인정에는 한계선이 작용해야 한다. (예컨대 페미니스트 운동이 반페미니스트적 운동과는 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f. 여기서 주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뿌리를 내리되 동시에 그 뿌리로부터 이동하는
   (rooting and shifting)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g. 이 정치학은 운동에서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이것이 형성되는  
   지역사회(local), 국가 수준(national) 그리고 지구사회 (global) 이라는 다차원적
   상황을 고려한다.  
h. 여기서 정체성이란 특정한 공간을 조건으로 하여 형성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수준, 지역 사회적 수준, 국가적 수준, 지구적 수준의 상황의
   상호조응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다중적 다차원적인 것이다.    
I.  이 정치학은 근대와 탈근대 사이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정치학이다.

활동주체들의 위기 극복을 위해 : 낡은 깃발을 내리고 새 깃발 없이도 가는 길
    
우선 나는 진보운동의 정체성 문제와 활동가 재생산 위기와 연관해 몇가지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활동가 주체들이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위기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 차원에서 이 특정한 위기를 극복할 만한 담론을 갖고 있지 않음을 반영한다고 본다.

민주화 이전의 사회운동에서 활동가들은 팜플렛이나 혹은 운동 지도부들의 정리와 지침에 따라 활동해 온 경향이었다.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 특히 시민운동 부분의 담론과 정책은 진보 사회과학자들이 생산한 지식에 기반해 왔다고 보여진다. 예컨대 여성운동의 경우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생산한 지식에 점점 더 의존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학자들이 생산하는 지식의 운동현장의 경험이나 목소리 반영정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항상 운동현장과 일정한 유리를 보이거나 운동 내적 요소를 깊이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활동가들은 이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이지 않는 경향이다. 반면 활동가들의 지식활동은 정체되어 있는 모습이다. 지식활동보다는 보다 많은 ‘정보’를 접한다. 그러나 운동의 사상과 정치학을 고민하고 창조하는 지식활동과 운동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쓰이는 정보습득활동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포코식의 문제의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진보적 사회과학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이 주어진다. 사회운동을 포함하는 진보 시민사회와 대학사회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활동가들에게 지식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새로운 지식으로 충전되는 방안을 사회운동과 대학사회가 고민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회운동에 대한 많은 지식들을 섭렵한다 해도 속시원한 대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즉 위기의 극복은 결국은 각 활동주체들의 몫으로 남겨진 상황이며, 더구나 누군가 한가지 논리로 말끔이 정리하기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고 변동적이다. 압축적 성장의 과정은 사회운동에도 해당된다. 현재 한국의 사회운동은 근대적 과제와 탈근대적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절대적 보편적 해답을 구하려는 근대적 패러다임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수많은 답이 있을 것이고 각자가 구하는 답이 다를 수 있으며 가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 다름들을 인정하면서 그러나 그 다른 길들이 결국 보다 나은 우리 자신, 집단과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일 필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누군가가 하나의 깃발을 꽂지 않는다 해도, 깃발이 없이도 삶을 사는 이유는 변화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완전무결해 보이는 근대적 진리가 개인들의 그리고 사회적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면에서 개인의 경험, 정체성, 사고와 행위들의 단선적인 발전과정이 아니라 나선형적 발전 혹은 들쭉날쭉한 발전의 과정과 그 과정의 다중적 의미와 결과들을 보는 사회운동 개념과 분석틀의 재구성이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 개념의 재구성: 개인의 경험을 포함하기
  
현재 한국 사회운동 분석이 주로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발달한 신사회운동론은 ‘집단적 정체성’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회운동에 집단적 정체성은 물론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 집단성에 대한 연구는 운동 안에서의 개인의 경험을 배제하기가 쉽다. 특히 집단성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사회운동에서도 집단적 정체성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각 개인들이 경험하는 운동과정을 인식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안의 파시즘’과 ‘우리안의 가부장성’들을 성찰하는 과정은 좀 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개인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의미는 자유주의적 원자적 개인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다. 사회운동에서 조직적 정체성만으로 밝혀내기 어려운 개인들의 경험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사회운동이라는 사회변화를 위한 집단적 과정은 개인들의 의식, 삶의 변화, 자기혁명 과정을 포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연구가 사회운동에 참여한 주체들의 구체적인 목소리와 경험이 담겨있는 경험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 사회운동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활동가들에게 널리 유통되고 있지 않은 것은 이론과 운동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들의 경험을 연구하는 과정은 활동가들의 재생산의 위기 진단과 그에 대한 대안을 찾는 데 기여할 것이라 본다.    

사회운동분석의 ‘정치’개념의 재구성: 자유주의 공/사 분리를 넘어서기

한국 사회운동 이론/담론에서 ‘정치’개념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기존 담론에서 주로 ‘정치’는 공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정치, 특히 국가영역과 관련한 정치를 의미했다. 한편, 공식적 정치 이외의 비공식적 정치들에 대한 분석은 소홀했다. 한국사회에서 이른 바 비공식적 정치영역, 연줄망과 학연 지연 등의 영역이 매우 중요함이 널리 인식되어 왔음에도 사회문제 분석은 국가제도 영역이나 공식적 정치영역에 편중되어 왔다. 그러나 비공식적 비제도적 영역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 전체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공식 정치 영역에서 비공식적 정치 영역으로 나아가 사적인 개인, 가족, 지역사회 등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포함하여야 한다.

사적인 것을 정치화해야 한다는 것은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이런 점에서 보편적인 의의를 획득한다. 물론 이것은 생태론자들이 여타 사회과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두고 지속적으로 기존 정치개념의 재구성을 주장해 왔던 것은 페미니즘이다. 사적인 영역을 정치 분석에 포함시킴으로써 한 사회의 민주화의 정도는 비로소 더 완전히 평가될 수 있다. 예컨대 한나라당 최연희의원의 성폭력사건을 공적 의미의 정당정치만을 적용할 때 정치의 민주화 정도가 제대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을 이 볼 수 있다. 사적인 것의 정치성을 고려할 때만 보다 완전한 평가가 가능하다. 정치개념을 사적인 영역으로 확장하고 공/사 영역이 상호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침투하는 영역이라고 볼 때 우리는 기존에 우리가 사회운동 분석에 포함되지 않았던 많은 요소들을 봄으로써 새로운 영역들을 개척해 나갈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여성운동이 성(Sexuality)이슈를 정치화하여 공론의 영역으로 이끌어 낸 것은 이런 점에서 정치 개념의 재구성이 이미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 여성운동은 이런 사적 정치의 이슈를 너무 빨리 공식적 정치제도로 수렴함으로써 한국 사회 개인들이 사적 영역에서 이 문제들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기회를 줄이고 법과 규정으로 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제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법과 제도의 정책화에 우선한 전략은 일정한 정도의 제도적 조건 안에서 개인들이 합리적인 이성으로 행위한다고 보는 자유주의 정치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운동분석에서 지역과 지구적 수준을 포함하기

나는 앞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보수적 전통의 유지, 재생산하는 공간으로서의 ‘지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에 따라 나는 개인들의 경험과 삶의 다차원성과 다중성의 측면에서 ‘지역’의 정치화를 제안한다.  

다수 사회과학자들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지역불균등발전을 지적해 왔다. 지역적 균열이 한국 민주화를 성패의 주요 관건임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인식에 비해 지역사회에 대한 경험적 실증적 연구는 활발하지 않다. 그 결과 지역문제는 하나의 이론이나 개념으로 남는다. 지역시민사회의 특성과 지역에 따른 차이들과 공통점들이 연구되어야 하고, 그리고 이것과 중앙담론과의 차이들이 드러나야 한다.

지역 시민사회와 사회운동 연구는 불가피하게 보수시민사회와 보수시민운동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 분석에서도 나는 보수적인 여성운동과 진보여성운동 밖의 여성개인들과 집단들을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존재가 지역에서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보수의 부분에서 민주주의의 공동목적에 맞는 선에서 보수와의 연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자유주의 정치학의 범주에서 가능한 소통과 연대의 지점들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기존 한국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분석의 새로운 영역의 확장을 의미하며 새로운 정치학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지역문제를 정치화할 때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포용적 연대의 정치학으로 이동해야 한다. 예컨대 최근 진행되는 지역균형발전운동은 정체성의 정치학의 한계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여기서 정체성은 다른 지역과 상호관련을 상실한 고립되고 닫힌 지역 정체성이다. 이 닫힌 정체성에 기반한 지역균형발전운동은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민주화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최근 역균형발전운동은 행정수도이전이라는 사안과 맞물리면서 그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역간의 이해추구로 나타남으로써 민주화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국민적 지지를 잃고 말았다. 지역균형발전운동은 지역사회민주화보다는 지역경제발전이라는 지방행정가들과 지역토호들의 지역보수주의와 결합되었다. 이는 앞서 논의한 지역사회의 의연한 보수성과 진보사회운동의 힘의 관계에서 결국 진보운동의 실패를 의미한다. 대안은 지역의 정체성을 닫힌 정체성에서 열린 정체성, 관계적 정체성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관계적 정체성이란 바로 지역은 다차원적 사회구조안에 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역은 한국이라는 국가 내부의 공간이며 지역불균등발전은 특정한 발전정책의 결과로 구조화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커다란 지구적 발전 정책과정에서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국의 지역불균등발전은 지구적 수준의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발전 정책의 한 결과이며 구성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역’은 ‘지구화’의 한 속성이며 그 구성물이다.  

이러한 지역, 국가, 지구적 수준의 다차원적 고려는 결국 한국 사회운동 위기론의 주요한 핵심인 포스트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의 문제를 다시 묻게 한다. ‘발전’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진보사회운동 담론이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발전주의와 성장주의를 비판해 왔다면, 이제 포스트 민주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 ‘발전’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최근 진보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이른 바 ‘지속가능한 발전’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중 하나일 뿐이다. 진보운동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길의 발전을 원하는가? 진보 사회운동 활동가들조차 ‘발전주의’에 침윤되어 있지는 않은가? 여성들은 ‘발전’하기를 원하는가? 발전은 어디까지인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이미 서구와 제3세계의 발전학 분야에서 지난 수십년간 다뤄왔던 주제들이다. 이제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적 발전과정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사회과학이 ‘발전정책’이나 발전과정의 부정적 결과들에 대한 비판을 넘어 ‘발전’이라는 문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탐구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5. 글을 나오며

나는 이 글에서 최근 한국 사회운동 위기론은 특정한 주체들의 특정한 경험에 의해 생산된 특정한 담론이며, 이것은 다른 주체와 다른 경험에서 보면 다른 형태의 담론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이 해체 작업이 사회운동의 위기를 지속화하며  사회변화를 부정하는 ‘보수적 해체’가 아니라 사회운동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이 위기를 새로운 인식으로 끌어안고 앞으로 나가려는 ‘진보적 해체’이기를 의도한다(조희연 2004)

위기는 진보적인 사회운동의 새 길을 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사고와 실천, 그리고 지적인 영역들을 열어가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과정은 복잡함, 혼돈스러움, 그리고  절망감마저 수반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풍부하고 성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ODA정책의 성 주류화를 위한 과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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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5

   한국사회포럼2006-'진보적 여성단체'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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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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