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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탁의 <강조해야 할 것>



관점을 갖는다는 것
    
수잔 손탁의 <강조해야 할 것>


정희원 기자
2006-05-09 23:37:44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유대계 미국여성으로 대중주의와 고급예술의 경계를 넘어 문화비평과 예술평론을 시도해 온 에세이 작가, 소설가, 극작가,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가, 여행가이자 저널리스트다. 널리 알려진 저서로는 첫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1964)를 비롯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부문 수상작 <사진에 관하여>(1977), 전미도서상 소설부문 수상작 <미국에서>(2000), 미 이라크 침공 당해 쓰여진 <타인의 고통>(2003) 등이 있다.

새로운 질문과 대화

그가 별세한 지 두 해가 지난 최근, 두 번째 평론집이 <강조해야 할 것>(Where the stress falls)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이 책은 세 파트로, 편집부의 배열원칙에 의해 이미지와 영상에 관한 <내가 본 것들> 에세이 17편, 문학작품과 인문학 텍스트에 관한 <내가 읽은 것들>에 담긴 평론 12편, 그리고 이동과 소통(대화)에 대한 생각과 여정으로 개입한 지역을 통과하여 남긴 <그곳과 이곳>에 실린 12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본 것들>에는 회화, 사진, 연극, 영화, 무용, 건축, 조경, 고전 음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문화텍스트를 경험해 추출해 낸 손탁의 시선이 담겨있다. ‘직접적 지식이나 경험이 없다면 침묵하라’는 그의 고집은 본질주의적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고유한 시선’이란 어떻게 배양되어 수많은 잡음을 넘어 대화를 가능케 하는가를 보여준다.

웅크린 도덕주의자보다 호전적인 유미주의자의 모습을 한 손탁의 화법은, 그의 시선들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성찰보다도 외부 성찰적인 촉수를 키워왔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음대로 떠들고 개성을 재생산하면서도 “미적취향과 판단은 퍼졌으나 핵심적인 가치들은 여전히 묶여있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시선을 가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높음과 낮음의 위계, 형식과 내용, 지성과 감성이라는 양극에 도전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 내가 감탄했던 새로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던한 것’의 강령을 내세울 생각은 없었지만, 무시되거나 잘못 판단되었던 새로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과거의 정전을 옹호하는 것보다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수잔이 예술품과 문화텍스트를 발굴하는 방식은 현실을 선택하고 대면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무용하며 해로운 판단을 거치게 하는 검열의 눈들, 산재한 판단과 신념에 의존하여 대상을 가리지 않고 덧씌워진 미디어의 성별 이미지, 여성에게 특히 억압적인 폭압이나 위계에 관한 비루한 폭력들도 수잔은 작품을 대하는 것과 다름없이 관찰자의 눈으로 해부하며 유쾌하게 풀어나가고, 때로는 없는 것처럼 순항한다. 그가 싸우는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질문이며 대화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평온하며, 그와 그의 전유물들과 ‘우리’는 한 테이블에 앉아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진다.

사라예보에서 부조리극을 공연하다

이 모음집은 특히 1993년 난민과 막대한 사망자를 남긴 보스니아 혈전 당시 사라예보에 방문한 수잔이 사무엘 베게트의 극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출을 맡아 막을 올렸던 기록으로 주목 받고 있다. 세르비아인들이 무슬림 27만을 학살하게 된 이 ‘민족/인종/종교의 분쟁’은 동구권이 붕괴하고 유고연방에서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언, 미국과 EU가 승인하자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무슬림 거주지를 점령하면서 현실이 된다.

“사라예보만큼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곳은 없었다”고 수잔은 전한다. 피부로 파고드는 산만함과 공포. 말보로 한 갑이 10마르크이자 의사나 방송기자의 월급이 3마르크인 1993년 사라예보 땅. 허수아비 유엔 평화군과 사격장이 된 곳에서 심지어 미군의 개입을 상상하는 자신에게 깜짝 놀라고, 서너 개 양초가 무대조명으로, 소품으로 쓸 당근이 없어 호텔 쓰레기통을 뒤져 롤빵을 챙겨 배우들에게 매일 주고, 6개월간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중년여성의 경험을 대면해 6주간 목욕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과 비교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행한 ‘문화행위’란 어떤 의미였을까. 역설적으로 ‘허구의 재연’인 부조리극을 공연하면서 수잔은 이들에게 문화를 통한 재활과 평상심에 대한 회복의지를 일깨운다.

미국에서 온 이방인이며 ‘유대인’ 여성이라는 것이 수잔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인종청소로 불린 사라예보 내전 희생자 집단이 ‘무슬림’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름에 대한 인식’이 부르는 참극을 외부자로 관찰하고 공감하고,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입하는 행동력은 수잔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대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두고 있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잔이 정체성을 버린 것은 너무 당연했고 모든 것이 구획화된 비극의 땅에서 경험을 온전히 섞은 뒤에야 따라오는 인식의 변혁을 출구로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일부 미디어는 천박한 서커스를 하면서 수잔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고 그가 강조하던 ‘그들/그것’에 관한 중요한 것들을 일거수일투족 ‘그 자신’에 관한 콘텐츠로 둔갑, 개인화시킨다. 그리고 그가 ‘기록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 믿었던 주요한 것들을 오로지 시장이 될만한 적당한 것들로 변형하여 대중의 시선을 사방팔방 분산시킨다. 수잔은 이들이 근대라는 짧은 역사 동안 내면화해 온 천습과 같은 곡예술을 간파하고 가끔 분통을 터뜨리지만 잔잔히 웃고 지나간다.

인간 존엄성에 천착해 출구를 찾는 것

그렇다면 수잔 손탁의 미디어 행위(act)는 무엇이 달랐을까. 오감을 열고 전방위적으로 관여하는 가운데 다핵적이며 관심사도 천차만별이 된 기록들 가운데서 ‘그가 사라예보로 간 까닭’을 주목하고 추적해보면 답이 나올지 모른다. 극장으로 가는 거리나 입구에서 문득 총에 맞을지 모르는 곳, 옆에서 사람이 죽어 넘어지는 사라예보 한 복판에서 왜 하필이면 연극인가. 그것도 생채기를 소금에 절여 바람 부는 곳에 꺼내놓고 절망에 절망을 부각할지 모를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니.

“사라예보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것이 의사나 수도 기술자가 하는 일처럼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극 공연은 아주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세 가지(글쓰기, 영화제작, 연극연출)중에서 사라예보에서 할 수 있고 사라예보에서 ‘소비’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한편 남유럽 발칸반도의 ‘언젠가 되겠지’ 주의와 국립극장에서는 문을 걸어 잠글망정 내어주지 않아 소품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경쟁심, 그 와중에서도 수잔을 둘러싼 오해와 이념 갈등, 인종은 물론이요 계파 간 반목으로 점철될 ‘여유’가 있는 사라예보를 수잔은 되려 사무엘 베게트의 작품이 뿌리내릴 수 있는 튼튼한 토양으로 다시 본다. “고도를 기다리며” 엉뚱한 희망을 양산하기보다 인간의 존엄에 천착해 출구를 찾는 것. 수잔은 사라예보 사람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고 전한다.

물귀신처럼 진흙탕 속으로 잡아 끄는 탁한 기류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의 목소리, 그리고 그러한 ‘전방위적인 대화’가 무엇을 만들어왔는가를 기억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수잔의 시대, 뉴욕, 그리고 수잔의 머문 공간들과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맹렬한 비판정신과 아이러니한 평화로움은 물적 조건이 완벽히 갖춰졌기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만한 관찰자의 시선이나 수많은 ‘예술작품’의 껍데기를 입고 소진된 자기연민의 목소리들 역시 수잔이 가려내어 온 것들이다. 결국 수잔의 관점이란 “가는 자(goer)”로서 인간의 존엄성이 절실해지는 경험을 통과한 뒤 다시 대면한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In America),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The Way We Live Now)의 한국어 번안판도 이어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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